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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여성신문에 실린 세일러문

Endy83 2005. 5. 6. 23:03

[만화 바로 보기]'세일러문' 소녀들의 변신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속에서 소녀들은 단지 주변 인물에 불과했다. 소녀들은 언제나 주인공인 소년의 보조 역할로, 소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몇 가지 조언을 해준다거나 혹은, 소년들의 충실한 동반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녀들은 이제 소년의 그들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롭고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소녀들은 더이상 연약하고 감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류가 위험에 처했을때 그들을 구할수 있는 영웅이 된 것이다. 결국 소녀들은 '변신'을 한 것이다.


1990년대의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그동안 만화속에서 보여지던 여성의 정형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소녀의 이미지 '변신'은 소녀 자신의 확고한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변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만화속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이미지 변화는 얼마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방영중인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이하 세일러 문)"은 원래 일본의 여류 만화가 다케우치 나오코가 청소년 잡지 '나카요시'에 연재하던 만화다. 그 후 92년 TV 만화로 만들어진 이래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기 시작했다. "세일러 문"의 큰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그저 평범한 소녀였던 세라가 어느날 검은 고양이 루나를 만나면서 달의 요정 세일러 문으로 변신한다. 그 후 루나는 세일러 머큐리, 세일러 마스, 세일러 주피터, 세일러 비너스 등 다른 세일러 요정을 찾아내게 되고 이 다섯 명은 악의 상징인 베릴을 무찌르게 된다. 이 다섯 명의 인물 외에도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여러 인물들이 등장했으나, "세일러 문"의 핵심적인 부분인 다섯 명의 평범한 소녀가 전사로 '변신'한다는 모티브는 이어진 시리즈에서도 계속 되었다.


"세일러 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변신'이다. 평범한 다섯 소녀가 '변신'을 통해 인류를 구할 만큼의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는 설정은 만화를 보는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화를 보는 누구나 자신도 한번쯤 다른 인물로 변신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세일러 문"에서 소녀들은 어떻게 변신하게 될까? 소녀들은 변신을 통하여 변신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점을 극복한 완벽한 존재가 된다. 소녀들은 더이상 나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실수투성이의 여성이 아니라, 이성적이며 힘과 능력을 두루 갖춘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변신'은 소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좀더 완벽하고 좀더 적극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변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녀들의 변신은 자신들이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 우연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의 인물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들이 그 임무를 다하면 변신의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세일러 문"에서의 변신은 일회용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TV를 보는 아이들은 소녀들이 어떻게 변신하는지 그 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이 멋진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그 변신으로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들처럼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만화는 상상력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기준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만화가 상상력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것을 보는 아이들은 현실에 속해 있다. 때문에 현실 속 아이들의 사고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은 만화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만화와 같은 상상력의 작품을 평하는데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냥 만화인데 무엇이 문제냐?"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나도 어느 정도 이 의견에 찬성하는 쪽이다. 그러나 현실의 기준으로 상상력의 만화를 평가할 수 없다면, 상상력의 만화를 현실 속 아이들이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결국 만화와 현실은 서로의 기본 바탕에 뿌리를 두고 서로 다르게 자라는 나무와 같다.


아이들이 "세일러 문"을 볼 때 그 만화를 재밌어 하는 것은 변신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아이들이 "세일러 문"의 소녀들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변신을 꿈꾼다면 그것은 현실에서 바로 잡아주어야 할 요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