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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원작 VS 애니메이션 VS 실사판

Endy83 2005. 3. 31. 01:45

글쓴이 : 세라문 중독 하루하루

 

 서투른 글을 시작하면서 혹 이 글이 다른 분께 불쾌감을 주지 않길 바라며 필자가 생각하는 세일러문의 원작·애니메이션·드라마의 최종결전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그 전에 세일러문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분들이 계실거라 추측됩니다. 사실 원작인 동명의 만화책이 눈길을 끌기도 전에 재빠르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어 버려서 대다수 TV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주1)

 

 물론 원작자(다케우치 나오코씨)에 대한 배려로 원작보다 전개를 빨리한다든가 아예 다른 노선을 타 버린다든가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애니메이션보다 원작의 완성도가 나은 시점에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은 원작과 하늘과 땅 차이로 전개가 유치해져 버립니다. 연출 만큼은 원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은 애니메이션 나름대로의 방향성에 있어서 원작 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실패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대중성은 확보되었기 때문에 상위의 시청률을 끄는 등 꽤 화려한 결과를 낳아버려 팬으로선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을 가진 그들을 다루어 보도록 하죠.

 

 첫째로, 애니메이션 감독과 드라마 감독 나름의 캐릭터 재해석을 들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세일러 마스  히노 레이양(국내 : 비키)을 들겠습니다. 원작에서 레이는 T.A. 여고의 학생 겸 영감(靈感)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사의 무녀입니다. 학교에서도 물론 하급생에게 쿠키를 받을 정도로 인망이 높고, 정치가인 아버지의 후계자와 어른스런 사랑을 나누는 누구보다도 진지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의 그녀는…… '남자는 다 바보' 라는 말버릇은 어디 갔는지 세일러문과 함께 잘생긴 남자들을 쫓아다니고, 결국 턱시도 가면을 사이에 둔 세일러문과 사랑의 라이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의 맛을 위해서 그녀가 희생 당한 건 이해합니다. 세일러 머큐리인 미즈노 아미(국내 : 유리)양을 망가뜨리기엔 디자인 자체도 수수하고, 감독이 염두한 원작 설정을 바꾸는 것도 미묘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아미는 사실 전교 밑바닥!…… 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미는 아미대로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소리 내뱉기로도 충분하고, 가장 망가지기 쉬운 세일러 쥬피터 키노 마코토(국내 : 리타)양과 세일러 비너스 아이노 미나코(국내 : 미나)양은 다른 세일러 전사보다 등장이 늦기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레이를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하지만 레이를 대중화(?)시키면서 원작까지 고려한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의 레이는 다채로운 푼수를 자랑하면서도 친구에게조차 정중하게 あなた(당신)라고 부르는 이율배반적인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허나 원작엔 비할 수 없지만 매력적으로 그려진 레이를 만족하며 쓴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 10년 후…… 또 한번 좌절하고 맙니다.

 세일러문의 츠키노 우사기(국내 : 세라)양은 인간관계만 좋은 바보, 아미는 공부만 잘하는 왕따, 레이는 얼굴만 예쁜 왕따, 마코토는 요리만 잘하는 왕따, 미나코는 염원하던 꿈을 이뤄 인기절정의 아이돌로 나타납니다.

 언제부터 세일러문이 왕따 전문 집합소가 된 겁니까? 드라마 감독의 멱살을 잡고 한번 묻고 싶군요.


 "당신, 세일러문 만화책 읽어보긴 했어?"


 

 둘째로, 그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시간에 묶여있습니다.

 

 원작은 모든 것의 시초는 '전생'이라고 말합니다. 우사기가 이 지구에 태어난 것도, 우사기가 세일러문이 되는 것도, 세일러 전사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녀를, 세일러문을 지키려 하는 것도 그 이유가 전생에 있습니다. 그래서 원작에서도 전생에 대한 이야기의 빈도가 잦기도 하지요.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미래지향적입니다. 전생은 세일러문과 턱시도 가면인 치바 마모루(국내 : 레온)가 이루어 지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고, 다른 전사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세일러 전사들의 첫 번째 적인 베릴 여왕과 퀸 메탈리아도 마치 '지금' 지구를 노리는 적들로밖에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네프라이트는 전생의 정실부인(?) 마코토를 두고 우사기의 친구 오오사카 나루(국내 : 한나)양과 찡한 로맨스를 보여주며 당당히 바람을 피우기까지 합니다.(여기서 또 마코토의 차이는 인생을 알 수 있지만)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면, 세일러문이 프린세스 세레니티로 각성할 때 연출상 머리가 풀어헤쳐졌다면 팬층이 1M 정도 두꺼워졌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지요. 물론 세일러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단머리(토끼머리)가 어디가겠습니까만은.

 

 각설하고, 드라마는 앞서 말한 둘과 다른 '현실'에 멈춰 있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세일러 전사가 전생  즉 과거에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세일러 전사들이 어쩔 수 없이 같이 싸워야 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지 계기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얼토당토않은 전개가 있지만서도 원작에서 보여지던 주종관계가 아닌 진짜 친구라는 느낌이 들어서 훈훈한 기분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드라마도 전생을 세일러문과 턱시도 가면에게만 국한한 덕에 세일러 전사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고, 싸운다고 해도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다. 만약 세일러문에 전생이 빠진다면? 이 질문의 핵심을 찌르는 주제였습니다.(그러나 만족할 만한 대답은 들려주지 않습니다)

 

 현재 세일러 전사들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 고민, 슬픔…… 그 고통들을 해결하면서 그녀들은 진정으로 세일러 전사가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면에서 필자는 비슷할지도 모르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의 시간 속에서 드라마가 좀더 현실에 가깝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셋째는, 원작과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라는 점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제작 자체가 유·아동층에 맞춰져 있습니다. 캐릭터를 상품화 시키기 위해 세분화된 설정을 모아 전형적인 설정으로 바꾸고, 전개도 올곧게 진지한 노선인 것만 아니라 때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캐릭터를 망가뜨리거나 코피를 왈칵 쏟을 정도로 귀엽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십바퀴는 돌 듯한 변신장면과 한·일 양국이 기억할 つきに かわって おしおきよ(국내 : 내가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세일러문의 세리프는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면에 있어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노선을 따라가면서도 자신의 길을 구축했는데, 그 결과 R(*주2)을 1쿨 + 30화로 나누어 감독 자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넣었습니다. 세일러 전사들이 죽고 환생할 때 원작은 그대로 부활시키지만 애니메이션은 평범해지고 싶다는 세일러문의 소원으로 또 하나의 '전생'의 기억을 잃은 채 부활하게 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세일러 전사들은 서로 자주 부딪히지만 기억이 없기 때문에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적은 나타나게 되고…… 바로 R에서 Return입니다. 필자는 '돌아온 세일러문'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무슨 박쥐인간 시리즈도 아니고.

 

 그런데 주목할 점은 R 이후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습니다. SS(*주3)의 적인 네헤레니아 사후(死後) SSS(*주4) 사이에 속편이라고 해야할지, 봉인당했을 네헤레니아가 다시 나타납니다만 본 전개와는 아무 상관없더군요.  원작의 세일러문은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반면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웃음)

 

 드라마는 시작 5초만에 사람을 탈력해 버리게 만드는 최종병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작이든 애니메이션이든 기존에 있던 설정들은 어디서 불태워 버렸는지 드라마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목과 표면만 세일러문이라고 표방할 뿐이지 속내는 알 수 없는 변신 소녀물이랄까요. 초반에는 '팬으로서'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봤던 필자지만 8화부터는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정확히는 케이코씨에게) 푹 빠져들면서 토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었습니다.

 

 하지만 꽤 인기를 끈 탓인지 전개는 점점 더디어 지기 시작하고, 몇 회 몇 회 질질 끌더니 끝내는 필자라는 팬조차 탈력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드라마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지 모릅니다. 끝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도 자신의 길을 구축하고 있겠지요. 언젠가 다시 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각설하고, 드라마는 10년을 지난 후에야 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자 계산기와 시계로 연락을 주고 받던 그녀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에 최신 분홍색 휴대폰(아마 일본 상점에서 팔고 있을거라 추측)을 사용하는 등 굉장히 세련되어졌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확실히 무시하더군요. 예를 들자면 드라마에서의 세일러문의 브로치가 R편의 것이라는 제보가 있습니다. 아직 딸도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작을 무시한 저 전개는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감독에게 묻고 싶군요.
 

"설마 R까지 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 글을 쓰면서 필자의 마음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팬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려진 세일러문의 이미지를 쓰려고 많이 노력했고, 없는 지식을 짜내어 주석을 다는 건방진 행동도 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원작 VS 애니메이션 VS 드라마' 라고 했지만 세세하게 다루지 못해 아쉽습니다.

 결론이 없다고 헛점을 콕콕 찌르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예, 여기서 얘기는 끝입니다.

 마치 대결 구도를 조장해 누구누구 승! 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어차피 뻔한 결과일테고, 제가 하고자 한 얘기는 같은 세일러문끼리 싸움을 붙이자는 게 아니라 원작과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워낙 필력이 부족해 제 마음속에 있는 얘기조차 확실히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바치며 필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1) 나카요시에서 연재할 당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TV 방영 후 만화책 판매량이 급격하게 올랐다고 합니다.

(*주2) 세일러문은 5가지 시리즈가 있는데, 다크 킹덤과 싸우는 세일러문편, 생명나무·블랙문과 싸우는 Return&Romance편, 데스버스터즈와 싸우는 Super편, 데드문과 싸우는 SuperS편, 세일러 겔럭시아와 싸우는 마지막 시리즈 Sailor StarS입니다.

(*주3) 데드문과 싸우는 SuperS 편이며, 세일러 내·외 전사들이 총 집합 하는 편입니다. 여담으로 가장 작화가 미려하지요.

 

작성일 : 2004. 6. 2

최종수정일 : 2004.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