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문 20주년/신작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crystal 1기 총평 : 만화는 만화일 때 아름다울지도...

Endy83 2015. 2. 23. 23:10

어느덧 세일러문 Crystal도 다크 킹덤 편이 끝나고 블랙 문 편으로 접어들었죠.

상황적으로 이미 떠날 시청자들은 떠나고, 남을 팬들은 남게 된 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사실 오늘에서야 세일러문 크리스탈의 다크 킹덤편 라스트(14화)까지 봤답니다.

 

세일러문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블로그 운영자 주제에 

대체 왜 그렇게 진도가 늦었느냐...라는 의문에 이런저런 변명을 하자면ㅋㅋ

 

우선 직장 일이 무진장 바빴던 것도 있고요, 

이놈의 애니메이션이 2주에 1화씩 풀리다 보니 아무래도 중간에 텐션이 끊긴 것도 있고,

한 3화까지 봤을 때, 점점 기대감은 떨어지고 실망감만 커져서 어느 샌가 다음 편이 안 궁금해져버린 것도 있고,

솔직히 내용을 다 아니까 덜 궁금했던 것도 있고...

 

(뭐 여러가지 있지만 솔직히 제일 큰 이유는 ㅋㅋㅋ

마모루가 너무 잘 생기게 나와서 아껴보고 싶었습니다 고이고이!!!

이건 지나치게 취향 저격이잖아요!!!

따지자면 저는 세일러문 팬이 아니라 턱시도 가면 팬이라니까...)

 

그래서 결국 오늘에서야 Crystal의 다크 킹덤 편을 마무리하고

늦은, 아주 늦은 감상과 총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주섬주섬 늘어놓아 보겠습니다만 상당한 스압이 될 것 같습니다.

 

 

 


 

 

 

 

미츠이시 코토노 여사님(ㅋㅋ)의 시대를 거슬러 온 듯한 우사기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는 점,

새로운 캐스팅들의 캐릭터 메이킹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점,

(늙다리 아저씨;;가 아닌 고등학생 마모루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점)

새 시대에 걸맞는 유려한 색감의 세일러문을 보게 되었다는 점,

머리 속으로만 그려왔던 만화의 그 명장면들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는 점...

 

정말 세일러문 팬질 오래 하길 잘 했다 싶을 정도로 

팬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신작 애니메이션(이후로 '신작'이라 서술합니다)이었습니다.

팬들 모두가 신작 제작발표 시점부터 오사부 씨가 흘리는 떡밥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죠!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의 최신 기술로 무장한 신작을 보면 볼수록 

90년대의 구작 애니메이션(이후로 '구작'이라 서술합니다)의 

미친 듯한 스토리 구성력, 연출력, 캐릭터 세팅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렇게 구작을 떠올리게 될 때마다 

신작 제작진은 대체 돈을 들여서 어디다 썼단 말인가? 싶기도 하죠.

 

어차피 원작 만화대로 대사든, 씬 구성이든 그대로 가져다 쓰는 판이니

각본에 큰 노력이 들어갔다고 느껴지지도 않고요.

 

신작이 '새로 만든'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구작의, 90년대의 세일러 전사 변신 씬 시퀀스를 그대로 갖고 온 부분에서는

솔직히 구작에 대한 오마쥬라기 보다는 그냥, 신작 제작진의 성의 없음마저 느껴집니다.

 

변신 장면과는 달리 구작에 레퍼런스가 없었던 원작 기반 필살기 사용 장면을 보면 

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신작 제작진이 무능하거나 또는 무성의한 셈이죠.

 

작화도 그렇습니다.

원작의 그림체에 맞게 캐릭터 작화를 다시 했다고는 하지만

저는 12화가 되어서야 겨우 여캐들이 예쁘다는 생각을 간신히 했습니다... 주인공들인데 말이죠.

게다가 그놈의 입술들...  볼때마다 진짜 깨요 ㅋㅋㅋㅋ 미치겠네

(물론 턱시도 가면, 치바 마모루, 엔디미온을 비롯한 남캐들은 

초장부터 너무 잘 나와줘서 매우 감사하긴 합니다!!)

 

아무리 이번에 지상파 방영을 안 했다지만

지금 벌이고 있는 세일러문 20주년 프로젝트의 규모를 생각하면

신작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분명 어느 정도의 투자는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으려나 싶죠.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

 

 

 


 

 

 

서론이 좀 쓸데없이(많이) 길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글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캐릭터 작화나 뭐 그런저런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작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위화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분들이 있을 듯 싶은데요.

분명히 신작은 원작 만화를 그대로 애니메이션화했을 뿐인데,

왜 원작의 테이스트가 사라졌을까요? 

 

만화책 원작을 봤을 때는 그럭저럭 봐 줄 만한 이야기었는데

왜 애니메이션으로 보자니까 이렇게 이상하고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걸까요?

 

원작의 유명한 장면들이, 대사들이, 순서에 변화 없이 그대로 재현되었는데도, 

왜 자꾸 뭔가 이상하고, 괜시리 뜬금없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사기와 다른 동료들이 아무리 같은 사명을 지닌 전사라지만 너무 쉽게 친해져 버리고, 

마모루와 우사기의 관계는... 이건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발전해 버리는지라 

마모루가 우사기에게 거의 약을 먹였나!? 싶은 수준 아닌가요(...)

 

얘기가 나온 김에 우사기와 마모루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원작 만화와 신작은, 우사기와 마모루가 만나는 에피소드 순서와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일치하고 있죠.

그런데도 신작을 보다보면 4화 가면 무도회 장면의 턱시도 가면과 세일러문의 첫키스를 보고

"아니 뭐 저런 날강도 같은 놈을 보았나! 중딩 여자애를 덮치다니!!!!!" 싶습니다(...)

 

 

 

이 두 분 만난 지 4화만에...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봤습니다.

 

'월트 디즈니' 위인전(...)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만화의 특징으로 인용되는... 뭐 유명한 내용입니다만.

 

 

 

 

 

즉 만화책에서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은  

독자로 하여금, 그 사이에 어떤 공간적/시간적 텀이 있었을 것이라 유추하게 만듭니다.


이 유추의 과정에서 컷과 컷 사이의 개연성은 독자에 의해 능동적으로, 

독자가 느끼기에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형성됩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끊기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다 보니 

만화의 컷과 컷 사이의 시공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생기고

시청자는 애니메이션의 연출자가 설정하고 의도한 공간적/시간적 개연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쓸데없이 연출자의 의도나 개연성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요.

 

즉 우리가 느끼는 위화감은 기존 원작을 알고 있는 독자가 상상한 컷과 컷 사이의 시공간적 텀과 

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해당 부분의 시공간적 텀의 차이가 느껴질 때마다 발생하는 것이죠.

 

 

 

 

 

원작 만화는 한 에피소드와 다음 에피소드 사이에, 

"내가 보지 못한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점을 상정하고 보기 때문에 

그간 세일러문과 턱시도 가면이 다른 사건들에서도 계속 마주쳤고, 

그 사이 어떤 감정이 생겼으리라는 점이 쉽게 상정이 되는데요.

 

신작에서는 시간적인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의 특성 때문에 

4화니까 4번 만나놓고 덮쳐?!!!!! ... 같은 느낌이 되어 버리는 거죠...

1화가 이틀에 걸쳐 일어난 이야기라고 쳐도 거의 일주일만에 덮친 것 마냥...

(이렇게 보니까 턱시도 가면 진짜 나쁜 놈 같음)

 

 

구작을 찾아봤더니 22화까지 가서야 가면무도회 첫키스가 등장하네요. 

마지막회가 46화니까, 거의 스토리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 사이 세일러문은 턱시도 가면에게 최소 15번 이상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가 되고요

 

 

 

 

우사기와 다른 전사들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어느 샌가 아미, 레이, 마코토가 우사기랑 엄청 친해져 있는데

얘네들이 우사기한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니 뭐니, 목숨을 걸고 지키니 하는 얘길 할 때마다

영 산통이 깨지는 것 같더란 말이죠. 

 

프린세스니까 지킨다, 라면 또 모를까...

소중한 친구니까 지킨다...? 너희 친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프린세스니까 지킨다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주려고 한 건 구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구작에서는 그 '소중한 친구'라는 관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다음 전사 등장까지 그렇게 텀을 들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우사기+아미 / 우사기+아미+레이 / 우사기+아미+레이+마코토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신경을 썼었죠.

(심지어 R 극장판에 가면 이들의 친밀감의 원인을 확실히 규명까지 해 주고요.)

 

심지어 나오코 여사의 입김이 들어가 원작을 충실히 베이스로 삼겠다고 공언한 그 실사판에서도

아예 각 캐릭터vs세상과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켜서 

나중엔 우사기가 그들의 인생에 진짜 구세주라도 된 마냥 만들었었는데...

 

 

요약하자면,

저를 비롯한 일부 시청자들이 느낀 위화감은

원작 만화의 진행 속도를 그대로 맞춘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점,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고려해서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

제작진이 이걸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건 좀 곁다리인데, 똑같이 원작 만화책대로 진행되고 있는 원피스 애니메이션판과 비교해보면

결국 이 사태는 필연적인 결과고 

궁극적 원인은 원작의 수준 문제...로 보일 수 있기도 합니다. 

 

원피스는 원작 만화에서 각 장면과 설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컷 간의 시간적 텀이 상당히 짧은 편이라 애니메이션으로 옮겨갈 때도

크게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세일러문은 원작에서 만화책의 컷과 컷 사이의 시공간적 텀이 상당히 길고,

이 부분을 온전히 독자의 상상력으로 때우게 하기 때문에(심지어 설정적인 부분까지 ㅠㅠ)

원작자가 개입하지 않는 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 감독의 의도가 더욱 들어가기 쉬운 구조를 가진 것이죠.

그리고 감독의 역량은 수준 이하였고요 ( '')...

 

 

 

하...

12화에서 내전사들이 사천왕이 죽는걸 보고 통곡하는 장면은 정말

충격과 공포였더랬죠...

 

하...
그렇게 써먹으려고 사천왕을 살려 둔 것이란 말이냐!!! ㅠㅠㅠㅠ

 

 

 

 

일단은 블랙 문 편도 계속 봐야겠지만요 ^^

기대 안하고 봤던 1화가 볼 만했던 것처럼 계속 기대를 가지지 말아야겠습니다... 흑흑 ^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