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의 이야기/-그외의자료

[스크랩]세일러문 평론

Endy83 2005. 3. 20. 16:44

최근 몇 년간 티비 뉴스며 신문지상에서 씹히고 있는 원조교제. 자료 삼아 나오는 사진에는 항상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한 무너진 중년의 모습과 더불어 세일러복 교복차림에 루즈 삭스를 신은 여고생 혹은 여중생이 등장한다. 씹자는 건지 아니면 원조교제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건실한 아저씨들마저 세일러복 여학생의 야릇한 매력에 눈뜨게 하려는 건지 좀처럼 의도를 알 수 없는 그 사진들을 보면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 히트를 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지구를 지켜주는 정의의 세일러 전사들과 타락한 원조교제의 어디가 비슷하냐고 반문한다면 일단은 기다리시라. 차차 설명할 테니.


변신소녀 시리즈물의 주된 타겟인 여자아이들이 그 부모들을 졸라서 타낸 코묻은 용돈으로 캐릭터 상품을 사고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정도로는 수지타산이 맞을 리가 없다. 보다 넓은 팬덤을 형성하고 그들의 주머니를 확실하게 털어내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 쓴 애니메이션이 바로 <세일러문>이다. (일견 유치찬란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이런 수작이 있는 것이니 얕잡아 보지 말 것) <세일러문>의 우리나라 방영 기간은 97년부터. 마냥 순진하게 눈을 빛내며 보기에 필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어른이었던 것이다(쿨럭). 아마 어린애였다면 보이지 않았을 너무나 많은 것들이 시선에 잡히는, 그 중에서도 <세일러문>이 야릇해 지려고 애쓰는 부분들만 눈에 들어오는 나날들이었다.


우선 신경 쓴 부분이 바로 변신장면. ‘나체로 등장한다’고 하니 무척 야하게 들리지만,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세일러 소녀들의 몸이라 봐야 허여멀건 살색 윤곽이나 다름없다. 명색이 어린이 만화인데 노골적으로 그릴 순 없어서 어린 시절 즐겨 갖고 놀던 미미인형을 벗겨놓은 것 같은 완곡한(?) 수준에 머물지만, 로봇메카전쟁영웅에스에프 시리즈에 목매던 소년들까지 티비 앞으로 끌어당겨 앉혀놓을 정도는 되었나 보다. 변신장면은 매회 등장하는데다 세일러 전사들 숫자가 늘어나고 새 시리즈가 시작할수록 업그레이드된다. 알아서 벗어주는 소녀들이 떼로 나온다는데 마다할 소년들이 과연 있겠는가-_-... 그렇다고 알로에 머리의 열혈단순 남아와 중력을 무시한 흉부 복부를 갖춘 무뇌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처럼 탐미파 소녀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누가 뭐래도 세일러문의 최고 모토는 ‘예쁘게 귀엽게 상냥하게’니깐.


예쁘고 귀엽고 상냥한 여자아이들. 기껏 변신해도 변신 전의 모습과 뭐가 달라진 건지 도무지 차이점을 찾아 볼 수 없는 세일러 전사들은 고민에 빠진다. 예쁘고 귀엽고 상냥한 이미지 메이킹만으로 공략할 수 있는 대상은 소녀들과 소년들, 기껏해야 세일러복 페티시즘의 변태(...) 아저씨들뿐이다. 초반부의 두 시리즈가 끝나면서 슬슬 이야기도 지겨워진다. 멍청한 적은 굽히지 않은 열정으로 세계정복을 꿈꾸며 소녀들의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지만, 정말 단순하기 짝없는 세일러문과 그 친구들의 필살기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지면서도 반복학습의 효과조차 보지 못하고 또 덤비다가 골로 가거나 ‘사랑과 정의’에 교화되어 버리거나.


하지만, 세일러문의 인간경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0화까지 출연하려면 이대로는 안된다! 유럽이랑 남미에까지 수출되어야 하는데! 그리하여 과거 모택동이 피력한 ‘적의 적은 내 친구’보다 한 술 더 뜨는 전략으로, 악당들을 좀 더 쿨하게 만들어 시리즈의 장수와 안녕에 이바지하도록 하고 태양계 입구를 지키던 외행성들을 과감히 스카웃한다. 덕분에 엄청나게 본때나는 모습을 갖추게 된 <세일러문>. <세일러문S>부터 나오는 외행성들(하루카, 미치루, 세쯔나)은 예체능계열 학생들인데다, 서민가정 출신답게 궁상맞은 내행성들과는 달리 스포츠카와 바이올린에 단독주택 별장 유람선 자가헬리콥터까지 지급해줘야 하는 폼생폼사의 인간들, 아니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외행성인 호타루는 세일러문 세계에선 전무후무한 병약미소녀, 즉 약값과 병원비가 든다.


이 아웃소싱(?) 전략때문에 지갑은(대체 누구의?) 홀쭉해 졌지만 그만큼의 성과는 있었다. 병약 미소녀의 고전을 답습하면서도 내부에 ‘침묵의 메시아’를 봉인한 호타루의 야누스적인 매력, 기고만장 왕후까시에 바람둥이 커플인 하루카와 미치루의 염장지르는 아슬아슬한 연애, 나이값 하라고 보내진 왕엄마 세쯔나. 전력에도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원래 내행성 다섯이 지능 떨어지는 적을 처치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으면 항상 바람처럼 나타나 장미를 던지던 턱시도 가면은 S시리즈부터는 할 일없는 백수가 되어버린다. 외행성의 멋진 언니들이 인정사정없는 필살기로 가볍게 마무리할 때 늑장으로 나타나 뒷북을 치거나 넋 놓고 구경하는 신세로 전락하지만, 잊지 말 것. 이 남자는 킹 엔디미온, 세일러문의 배필이자 치비우사와 치비치비[E.L...:치비치비는 딸이 아닌데...이 사람 뭔가를 착각하셨군.] 라는 귀여운 두 딸내미의 아버지다!(라지만 역시 장미를 뿌리고 망토를 펄럭이며 등장만 거창했지 아무 별 볼일 없는 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무리 스카웃된 외행성들이 멋지고 어른스러워도, 이들은 얼굴만 노티날 뿐 세쯔나를 제외하면 고등학생 혹은 그 이하이다. 하루카 미치루와 내행성 전사들의 나이 차가 겨우 한 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두렵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들도 소녀와 여성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위치한, 공식지정 전투복인 세일러복이 무리없이 어울려야 하는 나이다. 평소 우사기 및 여러 소녀들의 오.빠.인 하루카조차도 변신하면 짤없이 ‘... ... 메이크업!’의 주문을 외치며 미니스커트의 세일러복을 입고 고된 전선(?)을 누벼야 하는 운명.


시리즈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세일러 전사들은 갈수록 무모해지는 악당들을 차례로 교화시키며 그 막강함을 세계로 태양계로 은하계로 떨친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랑과 정의’라는, 센치하다 못해서 키취의 대열에 들어설 만한 주문으로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만들면서 악당들과 싸우는 그들은, 사춘기를 막 벗어난 소녀들의 공상을 만족시키고 세일러복에 열광(...)하는 소년 및 아저씨들의 은밀한 시선까지 받아내야 한다. 리본체조를 하면서 변신하는 세일러문, 네가 달을 대신해 벌을 줘야 할 대상은 아무래도 널 만든 제작팀인 것 같군. 망하고 또 망해도 계속 몰려오는 네 주변의 불쌍한 적들이 아니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