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후기에서 턱시도 가면 얘기를 하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잠시 접어뒀던 내용을 마저 적습니다.
사실 공연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여자가 연기하는 턱시도 가면'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무리 다카라즈카 남탑 출신이라도, 결국 여자는 여자고
저는 선 굵은 마모루의 끝판왕인 모치즈키 유타님이 연기하는 턱시도 가면의 이미지를,
액션배우 출신다운 격투와 매력적인 저음, 훌륭한 가창력...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상당히 많이 좋아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왜 그런 걱정을 했는지 우습도록,
야마토 유우가 씨의 턱시도 가면은 완벽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모치즈키 유타 씨와 우라이 켄지 씨를
가장 원 캐릭터에 가까운 턱시도 가면의 두 축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번에 공연을 보고, 야마토 유우가 씨는 저 둘을 능가한다고 느꼈습니다.
비주얼, 실루엣, 움직임, 의상, 캐릭터 표현, 그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빤짝이 망토가 아니야! 만세!)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관객층이 아무래도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다 보니,
내용이 지금 보면 엄청 오글거리는 신파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남역 주연으로서 그런 대사들을 몇년씩 소화하시던 분이니까
엄청 오글거릴 수 있는 백마탄 기사 역이나 왕자님 역의 연기를,
남자 배우들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분은 남자보다 멋있는 남장여배우였습니다.
아마 앞으로 그 어떤 남자배우라도 이 분을 넘는 자연스러운 턱시도 가면을 표현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턱시도 가면 배우들이 어딘지 모르게 뻣뻣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과는 정말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야마토 유우가 씨가 맡으셨기에
이번 세라뮤에서 턱시도 가면은,
적에게 얻어맞고 쓰러지고 세일러문에게 구출당하는 '포로'가 아닌
명백한 '왕자님'이자 '백마 탄 기사' 역할로 표현될 수 있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대충 기억나는 기존의 뮤지컬 포함 다른 매체에서의 턱시도 가면의 표현과 꽤 다르다고 느꼈던 장면입니다.
* 우사기와의 데이트 때, 항상 우사기의 징징거림에 끌려다는 마모루가 아닌
연상 남친답게 우사기에게 훈계하고 계속해서 전사로서의 자각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장면
* 애니메이션 설정처럼 '장미를 던지며' 나타나긴 했지만,
우사기를 위협하는 적들을 모두 '우아한' 격투로 쓰러뜨리는 장면
* 힘이 빠져서 변신하지 못하는 우사기에게
바로 그 원작에서만 나오는 '사이코메트리'로 땅으로부터 에너지를 전달하는 장면
* 필살기 '턱시도 라 스모킹 봄버'를 그 누구보다 멋지게 발사하는 장면
* 납치되거나, 적에게 당해 쓰러진 상태가 아닌, 맨 정신으로 다크 킹덤으로 향하는 장면
* 사천왕의 공격을 칼싸움으로 막아내는 장면
* 전생에서 아주 우아한 모습으로 왕자님의 포스를 풍기며 등장해서는,
"내 이쁜 여친 어딨어요 뿌우" 같은 느낌으로 엄청 귀엽게 세레니티를 찾아다니는 장면
* 전생에서 세레니티의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죽는 장면
* 세뇌된 상태라고는 하나, 퀸 베릴을 진심으로 자신의 여자인 듯이 대하며
마치 다크 킹덤의 '왕'인 듯한 포스를 풍기는 장면
* 현생에서 다시 깨어난 세일러문이 메탈리아를 상대로 은수정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하자,
세일러문을 노리는 메탈리아의 공격을, 사방 팔방 뛰어다니며 막아내는 장면
* 세일러문이 다른 세일러 전사들을 모두 부활시키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할 때,
한걸음 물러나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장면
훌륭한 배우와 훌륭한 연출, 그리고 상당한 비중,
이 모든 것들이, 그동안의 무능하고 무력한 턱시도 가면이 아닌,
히로인인 세일러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히어로로서의 턱시도 가면을
이번 무대에 살아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제가 좀 턱시도 가면을 편애합니다 ^ㅁ^ㅋ
그런데 공연을 보다가 야마토 유우가씨의 턱시도 가면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그냥 무대 위에 있는 저 사람이 진짜 그냥 턱시도 가면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바람에
전생에서 엔디미온이 사천왕에게 배신당하고 퀸 베릴에게 죽는 장면에서
너무 안타까웠던 나머지 울음이 터져나와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꺼이꺼이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공연 보다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어요 ( ..);;;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턱시도 가면을 3D로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곘다고 몇번이고 되뇌이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정도로 이 분의 싱크로율은 완벽했다고 말해두고 싶군요.
가까이서 보면 역시 '여자'의 얼굴이라
조금 위화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멀리서 보면 사실 배우의 얼굴이 자세히 안 보이기 때문에
...어느 샌가 몰입해버리고 맙니다 ㅠㅠ
아오... 이 기럭지 어쩔...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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