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분리－개체화」에 대한 축복

 

17.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분리－개체화」에 대한 축복

 

 

　세일러 문을 피오레가 끝장내려 하는 순간, 캡슐(자궁)의 벽을 자력으로 깨고 탈출한 마모루가, 남은 힘을 짜내듯이 피오레의 가슴에 장미꽃을 냅다 꽂는다.

 

 「아니…아니 마모루군이, 나한테 꽃을 던졌단 말이야.  마모루군까지 나를 외톨이로 만들다니」

　이 장면은, 결국 마모루 스스로가, 스스로의 분신이기도 한 피오레를 상처 입히면서까지(나르시시즘을 깨어버리면서도) 우사기라는「타인」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는 최종적 결단을 한 순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피오레 측으로 보자면, 마모루는 자신과 일심동체로, 주위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온 가엾은 인간이라는 자기 멋대로의 착각이 깨지고, 마모루가 자신과는 다른 뚜렷한「타인」이라는 사실에 냅다 직면하게 된 절망적인 순간인 것이다.  피오레는 비로소「버림받았다」.

　소혹성의 표면에 마구 피어 있던 키세니안 꽃은 피오레의 주변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시들어가며, 잿빛 지면이 노출된다. 「지구는 살았어」라는 세일러 머큐리=아미의 한마디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너무나도, 겉면의 금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만 다음의 흉한 회빛 표면이 노출된「행복한 왕자」동상이 떠오를만한 공허한 순간이다¹⁾.

　인공 자궁 공간인 소혹성은 분해되기 시작하여, 지구의 대기권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한다.

「마모루군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어.  다 같이 여기서 나와 함께 불타버리는 거다!」

…절망에 찬 나머지, 주위를 끌어들이는「자살행위」로 달리는 피오레.

「그러면 돼요, 피오레.  당신이 죽어도 내가 지구인들을 벌해 줄테니」

라며 속삭인다.  피오레의 가슴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키세니안의 우두머리.  키세니안=「나쁜 어머니」의 본성, 즉「이기적 유전자설」에서 말하는 스스로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식조차 단순한「전달체」로서 이용해 먹는 본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두진 않겠어!」

　힘을 다 하여 쓰러져 있었을 세일러 문=우사기가, 전생의 어머니인 달의 여왕, 퀸 세레니티에게서 이어받은 가슴의 은수정의 반짝임과 함께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일어선다.  은수정의 힘으로 빛의 궤도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는 못 해! 너도 같이 죽는거다」

라며 세일러 문의 은수정을 통째로 덥석 움켜쥐는 피오레.  세일러 문의 변신이 폴리고, 무수한 빨간 끈과 같이 되어 우사기의 가슴의 은수정으로부터 휘날린다²⁾.

　그 고통을 참아내며, 다정한 표정으로 세일러문은 피오레에게 속삭인다.

「뭘 두려워 하는 거야? 괜찮아.  당신은 외톨이 같은 게 아니야」

　그 순간 은수정은 섬광을 발하며, 눈부신 빛은 주변을 휩싸 버린다.  그리고 피오레의 뇌리에 하나의 비젼이 떠오른다.

　병원의 병실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어린 마모루가 혼자 울고 있다.  부모에 이어서, 모처럼 만난 피오레와 헤어지고, 혼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슬픔에 빠져서.

　마모루가 문득 고개를 들자, 작은 여자아이가 다가와 있다.  그리고 마모루에게 말을 건다.

「울면 안 돼.
　…있잖아, 오늘부터 우사기, 누나가 된다?
　엄마가 아기 낳았거든.  이거 축하하러 갖고 왔어.
　……자, 축하해！」

　…꽃다발에서 한 송이의 장미를 꺼내, 마모루에게 내미는 소녀.

　갑작스레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울고 있던 어린 마모루는, 부모의 모습이 시야에 없음을 깨달은 순간, 스스로가 세계 속에 독립한 존재라는 사실에 직면당하여「버림받는 억울함」에 휩싸인 재접근기의 유아 그 자체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거기에 다시, 한 여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외톨이가 된 마모루를 가엾게 여긴 나머지 말을 건 것이 아니다.  오히려「어머니로서의 세계」로부터 분리-개체화하여 하나의 자아를 가지기에 이른 마모루의 존재 그 자체를「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해」라며 새로이 축복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유아의 분리불안을 극복시키고, 개체회를 촉진하는 good enough mother의 태도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영화는, 마모루라는 남성이 그 소녀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분리 불안을 극복하고, 개체화되어 자립한 자기를 확립하기까지의『재접근기 위기』극복의 스토리인 것이다.

　…이 비젼을 보고 있던 피오레는 깜짝 놀란다.

　마모루가 자신에게 건네 줬던 그 장미꽃이, 실은 원래 (어린)우사기가 마모루에게 건네 준 것이었음에!

　이 장면은 마치 마모루 자신이「그 장미꽃은 우사기가 준 것이라는」현실을 처음으로 이 순간에 떠올린다는 회상과 같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모루는 쓰러져 있는 피오레를 구해내, 병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나날의 일도 기억해냈으며, 피오레에게 장미꽃을 건네는 이별의 장면은 반복하여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모루 자신이, 애초부터 그 장미꽃을 누구에게서 받았는가 하는 부분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리 하여 이야기 첫 부분의 식물원 장면에서, 어린 시절의 피오레와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마모루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꽃말을 구실삼은 우사기의「나를 잊지 말아」라는 한 마디의 진정한 함축이 해명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꽃을 건넨 것이 나=우사기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고.

　아마도 마모루의 우사기와의 만남을 통한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불안의 극복은 그때까지도 아직 불완전했던 것이리라.  이야기 첫 부분에서, 마모루는 스스로를 사랑해 주었던 여성이 일변하여 자신을 버리고 말았던, 그런 불안에 휩싸인 나머지, 우사기에 대한 애정에 깊이 빠지기를 주저하여 키스를 피하고 만다.

　그 순간, 스스로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되는 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원망과 복수심의 화신인「내재된 피오레」의 마음을, 다시금 소환하고 만 것이다.

　마모루는 우사기와 실제로 어린 시절에 우연히 병원에서 만났으며, 우사기에게「이 세상에 태어났음에 대한 축복(본래는 갓 태어난 우사기의 동생을 위한 장미꽃)」을 나누어받고서, 이 때 마모루 자신이 두 번째의 상징적인 출생 체험을 축복받는 식의 경험을 했기에, 비로소 이 다음의, 자기애로의 틀어박힘의 상징으로서의 피오레와의 이별의 의식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피오레와의 어린 시절의 만남과 이별과 동시에, 이 어린 우사기와의 어린 시절의 만남 그 자체도 마모루가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극장판」스토리 전반부에, 마모루의 방 침대에서 마모루와 우사기가 마모루의 죽은 부모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앞으로는 내가 마모쨩의 가족이야」

　…그렇게 마모루에게 기대오는 우사기…라는 화면의 구도가, 사실은 어린 시절 우사기와 만나는 장면에서, 병원 침대에서 어린 마모루에게 기대오는 어린 우사기의 장면 구도와 그야말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어린 시절에서부터 성장하기까지 줄곧 혼자임을 슬퍼하여 마모루의 마음 속에서 내내 울고 있던 마모루의「분리불안을 느끼는 채로인 내면의 아이」를, 청년이 되어서 만난 우사기가 처음으로 달래주었다는 것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이 어린 시절의 우사기와의 만남의 비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주】.

　【주】과연 어린 시절의 마모루는「진짜로」우사기와 만났던 것인가? 「사실성」과「진실성」과의 관계는, 우연히도 본 학회의 이번 대회(일본 인간성심리학회 제13회 대회)의 방법론 세미나(94년 9월 17일)에서 제시될 예정인 사자키와 나시모토에 의한 문제제기와도 관련지을 수 있는 흥미 깊은 문제이다.

　어느 쪽이든, 세일러 문으로 인해 이 비젼을 보고 있던 중에, 피오레도 다시 깨닫게 된다.  모체라는「세계」와의 일체감을 잃고서, 이 세상에 혼자 태어나「분리-개체화」하여 자립하는 것은 축복받을만한 일이라는 것을.

　그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타인은 있으며, 스스로도 그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도 된다, 그렇게 서로 자립한 자끼리 처음으로 진정한 연대의 끈을 엮을 수 있다는 것을.

「세일러 문, 너는 대체?…」

피오레가 손을 떼니 우사기의 가슴의 은수정은 꽃으로 변해 있다.

「꽃이다…」

눈물을 흘리는 피오레. 「속으면 안 돼요!」라는 키세니안의 목소리는 이미 피오레에게는 닿지 않는다.  비명과 함께 소멸하는 키세니안.

　그에 이어, 피오레 자신도 공중에 녹아 들어가듯 모습을 감춘다.

　아마도 이미 마모루는, 스스로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어머니되는 자」라면 스스로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독립한 고유의 생명과 의지를 지니고, 거기에 내재된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가기를 축복해 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이미 마모루는 어떠한 주저도 없이 우사기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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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순간의 허무함을, 대사가 아니라 영상으로 받아들이는「느낌」으로서 받아들여 주길 기대했음이, 레이저 디스크 본편 뒤에 수록된 감독 자신의 영상 해설(이쿠하라, 1994)에서 자세히 나와 있다.

2) 이쿠하라씨의 당초의 아이디어는, 세일러 문의 가슴에 피오레의 팔이 실제로 꽂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녀를 강간한다는 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