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의 진짜 이야기
TV 시리즈 디렉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돌입한 [세일러문S].
작년의 [R]에서는 동시진행되었던 극장판 때문에 시리즈 디렉터로서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인만큼, 올해의 [S]에 넣는 기합은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곧 3년째를 넘기려 하는 장기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사그라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그 파워와 인기의 비밀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떤 의미로, 원점 회귀적인 시도가 꽤 행해졌다는 [S]의 심플한 드라마 구성에야말로 그 답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작년 이상으로 고조된 분위기를 보이는 S편의 최종장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며, 시리즈 디렉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가 생각하는 [세일러문]의 세계관을 이 시점에서 한번 돌아보고자 한다.
●하루카와 미치루, 영혼의 끈
먼저 이쿠하라씨로서는 당초 우라누스와 넵튠의 관계를 어떻게 그리고자 하셨습니까?
음, 말로는 잘 표현이 안되는데, 운명공동체...같은 것으로서 둘의 관계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녀들은 세계를 구한다는 최종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죠. 그렇기에 끊임없이 어떤 그 무엇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신들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구하는 것이 올바르다는)아이덴티티를 서로 지지하며 서로 지켜주고 있죠. 다른 인간들에게 아무리 더럽다 손가락질 당하더라도 상관없다, 너만 이해해주면 된다, 너만 운명을 함께 한다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요. 그런 관계, 어쩐지 로맨틱하잖아요? 무슨 트로트 같긴 하지만(웃음).
초반부에, 역을 맡으신 오가타 씨와 카츠키 씨에게 "부부라고 생각하고 연기해 달라"고 지시하셨다죠? 즉 이쿠하라 씨에게 있어서, 부부란 운명공동체라는 말씀이신지?
이야~(웃음), 지금 와선 좀 심한 말이었다 싶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유부남들한테 많이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부부는 운명공동체 같은게 아니라고, 더 미적지근한 거라대요(웃음). 운명공동체라는 것은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이며, 언젠가는 파멸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는 퇴패적인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그건 즉 부부가 아니라는 거예요(웃음). 세간의 부부가 순간을 살아간다면 계속될 수 없다나(웃음). 죄송합니다, 전 독신이라서(웃음), 그 동네의 세세한 뉘앙스 차이를 몰랐거든요(웃음). 지금은 부부라기보다도 "서로의 영혼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자들"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엄청난 말이라 역시 좀 지나친 말이었다며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제110화 "우라누스들의 죽음? 타리스만 출현"에서,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아 엮는 장면이 있었죠. 그것도 그런 관계(서로의 영혼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자들의 관계)를 표현하려고 하신거죠?
그러게요.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는 세계랄까...이심전심이랄까요. 이거 또 달착지근한 말을(웃음) 해버렸습니다만.
이야기는 좀 바뀝니다만, 아까 우라누스들은 어떤 그 무엇을 두려워한다고 하셨었죠. 어떤 그 무엇이 뭔가요? 그녀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으음, 어떤 그 무엇이라 함은, 이 현실세계를 가꿔나가는 룰이나 모럴이려나요. 두려움이라 함은 모럴을 등진 이만이 느끼는, 언젠가 닥칠 "심판의 날에 대한 예감"입니다.
심판의 날에 대한 예감?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모럴(도덕)에 심판당하리라는 예감에 대한 공포"랄까요.
모럴(도덕)이 사람을 심판한다? 신이 아니라요?
신은 사람을 심판하지 않아요, 그런 건(웃음). 아니 확실히 그런 대사는 있었지만요(110화 중 우라누스의 대사 "신의...벌이라고?"를 말하는 것). 언제나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모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학교의 도덕을 배우고 자랐잖아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같은 거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 자는 이렇게 고생을 하게 된답니다~라고. 세상이 나쁘다고 정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겁니다~라고요. 아무래도 저 이야긴 분명히 개미 입장인 사람이 생각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웃음). 우라누스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무법자(outlaw)들의 두려움이란 대체로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다들 별 것도 아닌 학교교육에서의 모럴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무조건 베짱이 쪽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만(웃음). 분한 것이려나요, 지금에 있어 저는 단순한 개미에 지나지 않기에, 진정한 의미로서의 그것(베짱이로서 살아나가는 무법자의 두려움)은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현실의 이야기로 와서, 우라누스들의 인기의 비밀은 그거와 관계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모럴에 맞서는 무법자끼리의 공범관계가...
불현듯이 금단의 망상을 불러일으킨다고요(웃음)?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요(웃음).
그것도 있지 않겠어요(웃음),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저도 진지한 여자보다도 모럴에 맞서는 여자를 좋아하구요. 나쁜 놈과의 공범관계, 두근두근거리잖아요. 일할 때도, 놀 때도, 연애할 때도.
우라누스들의 인기의 비밀은 그 두근거림이로군요(웃음).
그 두근거림도 있겠죠(웃음).
이야기는 다시 진지한 방향으로(웃음) 갑니다만, 시리즈도 S편이 되고부터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다지 (호평을) 의식한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꽤 줄타기 하는 느낌으로 아슬아슬하게 하고 있고요(웃음). 굳이 들자면 현장의 스태프가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전부일겁니다.
구체적으로는?
각본, 연출, 애니메이터의 콤비네이션이 원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106화("운명의 끈! 우라누스의 아득한 날" 각본/에노키도 요우지, 연출/이가라시 타쿠야, 작화감독/타메가이 카츠미) 등은 좋은 예로 들 수 있겠군요.
S편의 클라이맥스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제124화, 제125화가 그 클라이맥스에 해당합니다. 이것도 스태프가 굉장하거든요. 2편 모두 각본은, 젊은 축의 에노키도 요우지 군, 콘티가 사토 쥰이치 씨, 작화감독이 이토우 이쿠코 씨니까요.
그거 대단하군요. 지금부터라도 기대할만 한데요.
언제나 교묘한 화술로 편집 스태프를 현혹시켜서, 좀처럼 자신의 본성을 보여주지 않는 닌자 같은 이쿠하라 씨지만 이번 아니메쥬 포위망은 다른 때와는 다르다. 이리하여, 이쿠하라 쿠니히코 씨의 인물상에 다다르기 위하여 인터뷰는 아직 계속된다...
●언더그라운드를 향한 동경
본인의 영상관은 언제적, 무엇으로 인하여 길러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상관? 없어요, 그런거(웃음).
그럼, 있다고 치면(웃음).
있다고 치면 말이죠(웃음), 역시 10대에 본 영화나 소극장 연극 같은거일까 싶네요. 당시에는 있을까말까한 용돈을 털어서 학교 급식도 안 먹고(웃음) 돈을 만들어서 보곤 했으니까, 각오도 대단했죠(웃음).
영화는 알겠는데요, 연극이라 함은?
아아, 그건 말이죠... 엥, 정말? 이란 느낌이라 좀 말하기 그런데...
뭔가요(웃음)?
친구한테 받은 티켓으로 우연히 [텐죠우사지키(天井桟敷)](67~83년에 활동한 전위연극집단)를 보고 말았어요.
[텐죠우사지키]라면 언더그라운드 전위연극 맞죠?
으음, 거기([텐죠우사지키])는, 알몸에다 하얀 분 바르고서 의미불명의 춤을 추는 것 같은(웃음), 그런 진상 언더그라운드는 아닌데요(웃음). 흥미 없는 사람한테는 똑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뭐 그래도 당시의 제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죠. 쾅~이란 느낌으로(웃음).
그도 그럴것이 괴짜(freaks)나 남창이 잔뜩 나와서 꼭 말세 같은게, 그러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한 불행한 미소녀가 세일러복 입고 빨간 란도셀 매고 시를 낭독하고, 하튼 대단하죠(웃음). 그것도 그 때, 파란 하늘에서 갈매기가 끼룩 끼룩 울고 있는 거예요(웃음).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갑자기 그런 걸 보고 만겁니다(웃음). 완전 그거예요, 모노리스(비켈란트에 의해 디자인된 석고모델을 3명의 석공이 14년간에 걸쳐 돌을 쪼아 완성시킨 작품 - 역주)를 만진 원숭이(웃음), 머릿 속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BGM 상태(웃음). 완전히 마비됐었죠. 멋있다~! 하고(웃음).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단순한 놈이었는지(웃음).
그도 그럴것이 그런 관념적인 비쥬얼은 해석하기 위해 있는 듯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관념 묘사를 십대 주제에 이해한 내가 스스로도 막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웃음). 그런건 좀 지적 호기심 왕성한 녀석이었다면 누구라도 보통 느낌이 쫙 오는 건데(웃음). 그 다음엔 뭐 약속처럼 [상황극장] 같은거, 그쪽 계열의 수상한 걸(웃음) 쫙 보고요. 그것만으론 좀 그렇다 싶어서, 인기있는 것도 마이너 메이저 안 가리고 한번 쫙 봤죠. 그러다 깨닫는 거예요. "에? 그 수상한 게 주류가 아니었던 거야?"라고(웃음).
아아, 연극은 언더그라운드가 주류라고 생각하셨던 거로군요(웃음).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웃음).
직접 연극도 하셨나요?
네, 당시 교토에 살고 있어서, 교토는 학생들 거리라 그런 것(소극장 연극)은 잔뜩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유행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안 오더라구요.
언더 그라운드가 아니면 느낌이 안와서요(웃음)?
네(웃음).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언더 그라운드를) 해볼래? 라 했더니, 다들 (언더 그라운드) 기분 나빠서 싫다대요(웃음). 그래도 기분 나쁘다는 소릴 들으면 들을 수록 기쁘더라구요(웃음). 그런 얘기(기분 나쁘다) 들으면, 개성적이라는 것 같아서요(웃음).
그렇군요(웃음).
이젠 아예 의미불명으로 만들고 싶어서(웃음).
의미불명으로 만들고 싶다(웃음)? 왜요(웃음)?
역시 그거 있잖아요, 그 나잇대쯤이면 여러가지 생각하잖아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라던가, 스스로 결정하지도 않은 모럴에 대한 거라던가, 그런 걸로 고뇌하잖아요(웃음). 그래서 그런건 말로 답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왠지 허무했던걸까요(웃음). 사회 속에서 아직 모라토리엄일 뿐인 스스로가(웃음). 그러니까 그런 (언더 그라운드의) 비쥬얼 속에 그 답이 있다고 멋대로 생각했던 거죠. "정치나 철학은 일상을 변혁하지 못한다. 육체언어만이 일상을 변혁할 수 있다" 식으로, 어딘가서 들었을 법한 걸 생각했던 거예요(웃음). 그래서 결국 다다른 곳은 말이죠, 퍼포먼스라는 말도 유행했었고(웃음). 해서 교토에 있는 좀 유명한 전위무답집단까지 갔죠.
결국 의미불명의 알몸댄스를 하고자 결의하신 거로군요(웃음).
맞아요(웃음). 그런 곳은 대개 오는 자는 막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갔더니 우리는 머리를 깎아야 받아준다나(웃음).
대머리가 되라고(웃음). 어떻게 하셨어요?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예 언더그라운드고 뭐고 전부.
왜요!? 역시 머리를 깎는게(웃음)?
그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애가 말이죠... "앞으로도 기분 나쁜 짓 계속한다면, 당신하곤 더 못 사귀겠어요"라길래(웃음).
에에-!? 그래서 포기해 버리신거예요? 그거(여자애 이유로 포기한거) 굉장히 연약한 의지잖아요?
그치만 그게 전부잖아요(웃음)? 여자애의 한마디가(웃음).
전부란 말이예요!? 여자애의 한마디가? 이쿠하라씨,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렇단 말이예요(웃음). 그러면 안된답니까(웃음)?
안된다는 건 아닌데... 아니, 이해가 가는 느낌이네요. 이쿠하라 씨의 영화관이.
뭡니까 그거(웃음)?
언더 그라운드와 여자애 얘기로(웃음).
그런거(영화관)하고 관계 없는데요(웃음).
아뇨, 아마 관계있을 겁니다(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본인이 영상을 만들어 나감에 있어 소중하게 여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처음으로 8mm을 다뤘을 때의 감동이랄까, 아마추어 감각이랄까... 그런 거라 할까요. 으음, 평범한 거라 죄송합니다(웃음).
아뇨아뇨, 과연 그렇군요.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이쿠하라 씨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화술 하나를 놓고 봐도 절묘한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인터뷰 때, 이쪽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바로 깊은 통찰력을 동반한 적절하고 정확한 대답을 10개든 12개든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 때의 몸동작이나 손동작 같은 제스처도 실로 알맞다. 대단히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또한 진지한 문제를 조심조심 얘기하나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죽도록 웃긴 맹독성 조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린다. 애드립 실력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언제나 취재를 하는 우리 쪽이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도 이쿠하라 씨 류의 댄디즘이리라.
그야말로 이쿠하라씨는 자기의 내면에 있어서도 "폼 잡는" 사람이다. 언뜻 보기엔 시부야 근처의 경박한 건달로 보일 외양도, 실은 본인 나름의 강한 신념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TV 애니메이션의 디렉터라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이, 평소에 멋을 부릴 정신적/시간적 여유 따위는 좀처럼 갖기 어려울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욱 "폼 잡는" 것의 의의를 항상 중요하게 삼는 이쿠하라씨. 자기를 끊임없이 갈고닦아, 스스로가 스스로로 존재한다는 것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는 이쿠하라 씨다운 주장이, 이런 데에도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출처 : 95년 아니메쥬
번역 : E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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